원기 108년 (2023년) 12월 8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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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의 도구가 된 ‘고준위 특별법’

작년에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하 고준위 특별법)은 본질보다 다른 내막이 채워져 있습니다.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합의는커녕 안건 상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11월 22일과 29일에도 시도하였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봐서는 분명 핵쓰레기를 잘 처리하자는 내용일 텐데 무엇이 문제일까요?

핵발전소로 떠넘기자는 게 정의로운 법안일까? 지금의 고준위 특별법이 합의를 못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핵쓰레기를 저장하는 기준입니다. 법안 중에서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을 설치하기 전까지 핵발전소 안에 핵쓰레기를 저장하는 시설을 만들자는 내용이 있습니다. 야당은 핵발전소 설계수명 동안 만들어진 핵쓰레기만 허용하고, 여당은 수명 연장을 하면 그만큼 더 핵쓰레기를 저장하자고 합니다.

둘 다 옳지 않습니다. 이 법안은 핵발전소 안의 임시저장 시설을 확장하자는 것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명확한 영구처분시설의 대책이 없으니 이 대신 잇몸으로라도 막아보자는 임시방편일 뿐이며, 지역사회에 계속 핵물질의 위험을 떠안기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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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확대를 위한 고준위특별법안 폐기하라! (11/29 기자회견문) : 공지사항|원불교환경연대

핵발전과 핵쓰레기는 함께할 수 없다.

고준위 특별법을 촉구하는 진영은 핵쓰레기 대응으로 에너지 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낍니다. 뾰족한 방안도 없을뿐더러 영구처분시설 건설까지 약 37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핵발전소에 임시로 보관 중인 핵쓰레기가 10년 내외로 가득 찰 것이라는 점입니다. 시도를 안 했던 건 아닙니다. 1986년부터 아홉 차례나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정하려 했으나 전부 무산됐습니다. 오히려 지역사회에 상처만 남겼습니다. 투명한 소통과 절차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으니 잘 될 리가 만무합니다.

핵발전소가 멈추지 않는 한 핵쓰레기 문제는 더욱 커집니다. 고준위 특별법이 이대로 통과되면 영구처분시설 건설은 어영부영 사그라들고, 핵발전소가 늘어나는 핵쓰레기를 계속 맡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고준위 특별법’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핵쓰레기를 영구히 안전 보관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이 법안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핵발전 부흥을 담보로 하는 법이 아니라 고준위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을 위한 법, 그리고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소통과 합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