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108년 (2023년) 12월 15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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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원전 재가동 금지, 위험성 여부로만 판결했다

2014년 일본에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처음으로 운영이 재개되었던 후쿠이현 오이원전 3~4호기 재가동 금지를 판결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2015년에는 다카하마 원전 3~4호기 재가동 금지 가처분 선고도 있었습니다. 원자력에 대한 전문지식과 상관없이 "그저 원전이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은지를 기준으로 운전금지 여부를 결정한" 당연한 재판을 진행했던 히구치 전 재판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구치 전 재판장이 당시 재판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내가 원전을 멈춰 세운 이유> 한글 번역서가 출판되었습니다. "편견을 씌우지 않고 사안을 꾸밈없이 파악하는 안목을 지닌 고등학생 이상의 독자분이 읽는다면 원전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며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히구치 전 재판장도 재판을 맡기 전까지는 막연히 핵발전은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핵발전소 위험을 '사고발생 확률'과 '피해의 크기' 두 가지 의미에서 분석했고(24쪽), 후쿠시마 핵사고에 대해 검토를 하면서 일본이 궤멸될 뻔한 위기를 ‘기적적으로’ 운좋게 피했을 뿐임을 알게 된 이상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죠. 그리고 핵발전소 사고는 그 피해가 국가 존속을 좌우할 정도로 크기 때문에 고도의 안전성이 요구되는데 지진 대국인 일본에서 내진설계 기준이 주택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안전 3원칙(멈추기, 식히기, 가두기)'이 보장되지 않는 핵발전소 운영은 중지해야 마땅하다는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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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구치 히데아키 전 재판장이 집필한 <내가 원전을 멈춘 이유> 책 표지

무지는 죄, 침묵은 더 큰 죄

히구치 전 재판장은 책에서 '후쿠시마 사고 이전의 나와 소송 담당 이후의 나'(81쪽)를 자세히 밝힙니다.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는 당연히 대지진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을 것으로 믿고 안전성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소송을 진행해보니 '오이원전 내진 설계 기준이 지진강도 6 미만을 견딜 수 있는 700갤런(gal)에 불과한데 이에 대해 간사이전력측 변호인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다는 점, 많은 판사들이 핵발전 관련 소송이 전문적인 기술 소송이라 어렵다는 권위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을 깨닫고 '상식'과 양심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원전 관련 소송이 30건 이상 법원에 계류 중인 것에 대해 법률가들이 과학이 아니라 과학자를 신봉하며 전문기술 논쟁이나 학술논쟁에 사로잡혀 평범한 질문을 할 수 있는 현실감을 잃어버렸다고 개탄합니다. "정부, 규제당국, 전력회사, 법원까지도 대중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포기" 하고 있다며 핵발전소를 폐하는 것이 가능한데도 오히려 핵 확장 정책을 내세운 기시다 정부를 향해 "핵발전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도 죄이지만, 위험성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더 큰 죄"라고 경고합니다.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핵발전소 운영을 허용할 수 없는 이유가 지극히 단순하고도 당연하다는 것, 고도의 전문지식을 이용해 심오한 논의를 벌여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히구치 전 재판장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핵발전의 위험을 알고 핵발전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내가 원전을 멈춘 이유> 함께 읽기를 추천합니다. 578차 생명평화탈핵순례 기도로 만난 모든 인연이 힘있게 한걸음 내딛는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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