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109년 (2024년) 9월 6일 발행
올 해도 상상 이상의 폭염과 열대야를 겪은 시민들이 ‘기후행진’으로 거리를 채웁니다.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지만 ‘더 늦기 전에’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햇살보다 뜨겁기 때문입니다.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원불교는 기후정의 기도문에서 “성장만이 살길이라는 허상에 가려, 더 개발하고, 더 생산하고, 더 소비하는 것에 종속된 삶은 자연과 인간을 희생시켜 더 많은 상품으로 이윤을 쌓아야만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기업과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직시”하고 “기업과 자본의 구조적 위협에 영합하여 물질에 대한 주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과도한 소비와 순응으로 기후위기에 일조해 온 잘못된 삶을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남용하고 있는 물질적인 혜택과 편리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곳에 쌓여만 가는 ‘싸놓은 똥’ 덩어리들이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해하고 있음을 이제는 직시합니다. 에어컨 없이는 잠들기 힘든 열대야의 밤들을 지내며 전기에 종속된 현재의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한시도 전기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을만큼 전자기기에 중독된 사회에 살면서 깨끗한 공기를 포기하지 않고, 위험을 떠넘기지 않고, 폐기물 뒤처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전기를 만들 방법을 진작 찾지 않은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싸놓은 똥’을 걱정하는 사람들
'싸놓은 똥'은 핵발전소(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고 남은 강한 독성의 핵폐기물을 말합니다. 전기를 만드는 쓰임이 다한 핵연료가 여전히 핵분열을 멈추지 않아 고열과 강한 방사성 물질을 뿜어내는 위험한 쓰레기입니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로 알려진 핵발전소 수조에 임시로 가둬두었지만 아무도 어떻게 치워야할지 속수무책입니다. 모두가 함께 싼 똥인데, 치우는 몫은 누가 담당해야 할까요?
‘싸놓은 똥’은 넘지 못할 숙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운영중인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고 본격적으로 ‘똥’ 치우기에 나선 독일이 핵 쓰레기장 부지를 정하는 것조차 2070년대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발표했습니다. 독일 연방 정부의 의뢰를 받아 프라이부르크의 생태연구소(Öko-Institut)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핵폐기물 안전 기준을 지키면서 법률이 정한 대중참여 다단계 장기 조사를 거쳐 최종 처분장을 선정하려면 2074년에나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투명한 방식으로 논의를 지속하고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해 최대한 안전하고 가능한 최종 처분장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싸놓은 똥’을 치우는 것도 2070년에나 가능하다는데, 고리와 월성, 그리고 한빛까지 핵발전소 수명을 10년씩 연장해서 추가될 ‘똥’은 수십년 간 어디에 숨겨둘 수 있을까요?
https://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1
동료시민을 만납니다
원불교환경연대는 2023년 한해 동안 일상이 투쟁이 된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현장을 찾고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는 동료시민 10인을 인터뷰했습니다.
경주 월성 나아리 황분희 어머니,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장영식 씨, 울진 이규봉 씨,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장마리 씨, 기장해수담수화반대대책위 김용호 씨, 탈핵변호사 김영희 씨, 삼척평화 이옥분 씨, 영광군농민회장 노병남 씨, 광주에 살며 탈핵하는 일본인 오하라 츠나키 씨, 울산공동행동과 탈핵신문을 이끄는 용석록 씨 등 입니다.
물도 공기도 온통 삼중수소인 곳에서 가족이 살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을까요, 누구나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핵오염수를 걸러낸 물을 식수로 먹을 수 없잖아요, 애초에 핵발전소를 짓지 않았더라면 ‘방사능 똥’ 걱정은 없었을 일이라고 외치는 우리의 이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찾지 않은 무거운 진실을 들춰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수십 년 동안 핵발전소와 함께 살며 지역에서, 법전으로, 사진으로, 캠페인으로 탈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싸놓은 똥은 치워야지 않것소>(2024, 도서출판 말)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