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109년 (2024년) 10월 4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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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때보다 길고 뜨겁고 힘겨운 여름을 지내면서 기후위기 대응이 절실해졌습니다. 저탄소 에너지 공방과 함께 ‘원전 르네상스’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냉난방과 AI 데이터센터 등 ‘전기먹는 하마’가 날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대용량 전기생산이 가능한 ‘죽은 원전’도 부활시키자는 주장까지 등장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핵진흥 정책’이 터키원전 수출로 결실을 맺었다는 과장광고도 서슴지 않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COP28’에서 ‘원자력 3배 선언’ 했지만 실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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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공개된 ‘세계원자력산업현황보고서(WNISR) 2024’ 동향입니다. 지난 7월1일 현재, 전 세계 32개국에서 총 408기 원자로가 가동 중인데, 이는 2023년보다 1기가 많을 뿐, 2002년보다 30기가 적고 1989년보다도 10기가 적은 숫자입니다. 전체 발전량 중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6년 17.5%에서 지난해 9.1%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미 오래 전 사양길에 접어들었음이 확인된 것입니다.

또, 세계 최초 상업원전인 옛 소련의 ‘오브닌스크’가 가동된 1954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전 세계에서 계획됐거나 건설됐던 원전 807기 가운데 취소 또는 무기 연기된 사례가 11.5%인 93건이라고 합니다. 건설 또는 계획 중에 10건 중 1건 이상이 무산된 셈입니다.

반면, 세계원자력협회는 올해 8월 기준으로 전 세계 원전 현황을 ‘가동 중’(439기), ‘건설 중’(64기), ‘계획된’(88기) 등으로 집계하고, ‘제안된’(proposed) 원전은 무려 344기라고 발표했습니다. ‘제안된’의 분류 기준을 “특정 프로그램 또는 부지 제안, 시기가 매우 불확실함”이라 설명하면서 말이죠. 현실성과 무관한 ‘장밋빛 부풀리기’의 전형입니다.

‘세계원전산업현황보고서 2024’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신규 건설은 급속히 줄었고, 1990년 처음 신규 원전 수(11기)가 페쇄(12기)보다 적어진 이후 꾸준히 감소 추세임을 보여줍니다. 최근 5년(2019~2023년)만 놓고 봐도 신규 원전은 27기였지만, 폐쇄 원전은 39기입니다. 한국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동안 수출 실적이 없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세계 신규 원전 시장은 러시아가 장악해 전체 신규 건설 59기 중 20기를 러시아가 맡고 있습니다. 나머지 39기 가운데 37기는 각자 자국 기술로 짓고 있고(이중 23기가 중국), 남은 2기를 프랑스가 영국에 짓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신규 건설의 경우도 공사지연 사례가 허다합니다. 건설 중인 59기의 원전 중 40%인 23기의 공기가 지연됐고, 이중 7기는 그 기간이 10년을 넘었습니다. 브라질 앙그라 3호기는 1984년 건설을 시작해 30년 이상 지연되다 결국 포기선언을 했습니다. 이란 부셰르 2호기의 건설은 무려 1976년에 시작됐다가 40년 동안 중단된 뒤 2019년에야 재개됐고, 일본의 시마네 3호기도 2006년 공사가 시작됐지만 아직도 운전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을 위해 핵발전소를 늘려야 한다고 하지만 공사기간만 10년에서 수십년까지 걸리는 핵발전소가 대안이 되기는 요원합니다. 더구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좌초되는 사례 등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원전산업협황보고서’는 르네상스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꿈입니다.